백수 2주차에 써보는 생각
퇴사일 6월 30일을 기준으로 퇴사한지 만 2주가 되었다. 마지막 주에 휴가를 썼기 때문에 마지막 출근일을 기준으로 하면 일을 쉰지는 거의 3주다. 방학도 생각해보면 3주 정도 지나면 이제 꽤 쉬었다싶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정보 교환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블로그 세상에서 별 정보가(價) 없는 그저 내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진 건, 어쩌면 누군가에는 어떤 면에서는 유익함을 줄 수 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이를테면, 심적인 안정의 측면에서? 내가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내 블로그가 파워블로그도 아니지만 어쩌다가 '백수'라는 키워드를 검색해본 사람의 눈에 띄어서 읽게 된다면 말이다. 이 글을 통해 어떤 검색어로 유입이 될지는 모르겠다.
글이란 건 내 이야기를 쓸 때 가장 재밌는 법인데, 이럴 때 아님 이토록 즐겁고도 비생산적인 창작물을 만들 기회가 흔치 않기도 하다. 그 흔치 않은 기회를 빌어 서두부터 주절주절 길게도 늘어놓으며 2주, 아니 3주 동안의 아름다운 백수 생활을 한 번 되돌아본다.
백수 생활을 돈 걱정없이 무한정 이어나갈 수 있다면 누가 마다하랴 싶다. 우리 세대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끊임없이 노동의 신성함과 자아실현을 연결지어 주입받은 탓에, '나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 자아실현 하는 것은 인생의 최대 목적'이라고 생각하고, 의심하지 않고 살아왔다. 직업을 통해 정말로 자아실현을 하여 멋있게 사는 사람들도 많을테지만, 나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직업 세계를 탐색 할 때부터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컸다. 노는게 적성에 맞다고 스스로 느낀다면, 굳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그건 사실 막연한 불안감이 아니라 '예기된 불안'이며 불안을 넘어서 '합리적인 예상'에 가깝지 않나 싶다. 그렇지만 그 '합리적인 예상'을 접어두고 일단 취직을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취직을 해야한다. 그리고 취직을 하려면 지원하고자 하는 직종에 내가 적합한 인간이라며 어떻게든 꾸미고 맞춰서 자기소개서란에 '자소설'을 써야한다. 자소설이 아닌 정말 자기얘기를 쓸 수 있는 지금은 얼마나 행복한가...
아무튼 그렇게 취직을 하고 일을 하면 나처럼 일보다는 노는게 적성에 맞는 인간들은 주말을 위해 주중을 희생하고 사고싶은 것을 사고, 노는 비용을 벌기 위해 일을 하며, 적성에 맞는 '놀기'만을 할 수 있는 인생을 꿈만 꾸는 거다. 나는 그 불구덩이에서 1년만에 빠져나오면서 운이 좋게도(?) 백수 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일할 때는 뭐하냐고 묻는 말에 나는 떳떳했다. '일해' 혹은 '바빠'라는 말을 하는게 그냥 떳떳했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는 당연히 그런 떳떳함을 하루 빨리 누리고 싶었고, 그 떳떳함의 원천이 되는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 되고 싶었다. 나한테는 무슨 일을 할지, 얼마나 벌지보다(아예 상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 별거 아닌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걸 바로 취직에 대한 조급함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번 경험해봤으니 이제 나는 그 조급함은 독이 될 뿐이라는 걸 알고, 그 떳떳함이 대단한 것 같지만 생각보다는 별 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래서 아마도 잠시(?) 뿐일 백수 생활이 나에게 정말 소중한 시간이라는 건 몸소 매일매일 체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나 부모님의 뭐하냐, 뭐할 거냐라는 질문에 뜨끔하긴 한다. 막상 그 질문을 받으면 그 사람이 뭐 그리 면박준 것도 아닌데 변명부터 늘어놓고 싶어진다. 지금도 그런지도 모르겠다. '지금 백수여서 좋다'라는 말을 이렇게나 돌아 돌아 쓰고 있으니.
결국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나를 뜨끔하게 하는 그 질문에 떳떳하게 답하고 싶어서다. 나는 일단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것인데도 주중에 자유롭지 않아서 못했던 것들을 더 마음껏 즐겼다. 영화를 보고, 친구들을 만나고, 책을 보고, 운동을 하는 것. 말 그대로 거창할 것 없는 그저 노는 것. 그리고 직장 다닐 때는 못할 것들을 해보고 있다. 탈색 3번 후 파격적인 색으로 염색해보는 것. 성수기가 아닐 때 여행을 떠나는 것(이건 아직 못갔지만). 노는 시간 이외에는 국비지원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원에서 내가 배우고 싶었지만 못 배웠던 것을 배우려고 하고 있다. 게으르지만 적당히 게으른 생활이다. 앞으로 뭘 할거냐라는 질문에는 일단 잘 놀 것이고, 학원을 다니며 나름대로 취업준비는 꾸준히 할 것이다. 조급함은 버리고 백수생활을 마음 껏 즐길 것이다. 하루 하루 나를 위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니까.
2017. 7. 14.
ㅇㅎ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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