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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클라이머의 일상

도쿄 암장, 비펌프(B-pump) 오기쿠보 방문기(2019.1.25.)

  클라이밍을 시작한지 만 2년이 지나는 동안 오랫동안 갖고 있던 목표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볼더링의 성지라 할 수 있는 도쿄의 암장을 가보는 것이었다. 사실 도쿄는 가까운 곳이라 마음만 먹으면 갈 수있는 곳이지만 오랫동안 미뤄왔던 건 '도쿄까지 가서 클라이밍을 하기엔 아직 내 실력이 비루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국엔 이번에 가게 된 건 결코 실력이 만족할만큼 올라왔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제는 도쿄 암장 투어를 가기 위해 필요한 건 실력이 아니라 그냥 클라이밍을 즐길 마음가짐 그거 하나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쓰고 보니 오그라드는 말이지만- 어쨌거나 나와 내 일행들은 그냥 비루한 실력으로 즐겁게 다녀왔다. 

  물론 이번에 다녀오면서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번에 다녀온게 아깝지는 않았다. 사실 암장투어는 여행의 일부일 뿐이었기에. 어쨌거나 간단한 후기를 남겨본다.

 

  여행 첫날, 우리 일행은 인천 공항을 떠나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후 곧바로 숙소에 왔는데 아무리 가까운 일본이라지만 비행시간 3시간과 나리타 공항에서 도쿄시내까지 2시간의 이동시간을 합치니 반나절이 훌쩍 지나갔다. 서울에서 새벽부터 온 건 아니었기 때문에 열심히 달려왔어도 오후 5시쯤 이었다. 제대로 된 끼니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는 숙소에 짐만 던져놓고 숙소와 가장 가까웠던 암장인 "B-PUMP Ogikubo and Shop"(구글 맵상 풀네임. 이후 비펌프) 로 향했다.

  우리 일행 모두 도쿄가 처음이었지만 비펌프 암장을 찾는 건 아주 쉬웠다. 비펌프 암장은 그야말로 오기쿠보역에서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에 있었으니. 지친 우리에게 그나마 다행이긴 했는데, 다만 이 때 우리가 공항에서부터 오는 동안 먹은 거라곤 편의점에서 산 계란 샌드위치 뿐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암장이 반가워도 운동할 힘은 있어야겠다 싶었다. 그래도 클라이밍을 더 잘 즐기기 위해서는 몸이 가벼워야 한다는 생각에 오기쿠보역의 키오스크에서 주먹밥을 하나씩만 사서 먹고 운동을 하러갔다. 그렇게 바다 건너 다른 나라 땅을 밟자마자 제대로 밥도 안먹고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니 뭐 엄청 잘하는 사람들도 아닌데, 돌이켜보니 그렇게까지 우리가 클라이밍에 미쳤었나-하는 생각도 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도쿄에서는 선클 후식사다.


  비펌브 암장에 들어서니 간판에 'Shop'이라는 말이 붙어있듯 꽤 많은 클라이밍 용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구경은 했지만 사지 않았다. 가격표도 보지 않았지만 왠지 당연히 비쌀 것 같았다. 비펌프 티가 예쁘면 기념으로 살까했는데 이 때 비펌프가 새겨진 티셔츠 중에는 딱히 예쁜 티가 보이지 않았다.

  비펌프는 넓고, 높고 아름다웠다. 미처 사진을 찍지 못했는데 한쪽 벽은 선수 트레이닝용 클라이밍 대회용 벽으로 셋팅되어있고, 그 외에도 공간이 워낙 넓어서 엄청나게 다양한 벽들이 있었다. 벽도 많은데 홀드도 꽤 빼곡하게 박혀있어서 엄청나게 많은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 많은 벽들이 모두 볼더링을 위한 벽이다. (지구력 존이 없음!) 우리는 체력과 시간의 한계때문에 그 많은 문제들을 시도도 못 해보고 왔다는 점이 지나고보니 무척 아쉽다.

  참, 그리고 돈도 돈이다 사실... 일본 암장은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등록비를 받기 때문에, 등록비와 일일이용 요금을 합치니 한화로 약 4만원가까이 된다. 뽕 뽑아야한다고 생각한다면 새벽부터 인천에서 출발해서 밥 안먹고 암장에 오후 2-3시쯤 도착한다음 굶어죽기 직전에 나오면 된다. 우린 그 정도까지의 열정은 없었지만 어쩌면 그렇게 했어도 아쉬움이 남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참 이 벽들을 보고 신나서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붙어보고 떨어지곤 했다.

  특히 이 오버행 벽...! 영상과 사진을 남기기 아주 좋은 데다가 주목을 한 눈에 받기에 아주 좋은 벽이다. 이렇게 각이 센 오버행에도 할만한 문제가 있긴해서 영광스럽게도 한 문제 푸는 영상은 남길 수 있었다. (빨강테이프-연두홀드 4급짜리 문제)

  클라이밍을 즐기려고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 중 하나는, 난이도 시스템이 어떻게 되어있느냐 하는 것일텐데 내가 느끼기에 한국의 대부분의 암장보다 난이도가 굉장히 세분화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8급에서 1급으로 갈 수록 어려워지는 식으로 구분되어있는데 1급 위에도 뭔가 있어서 난이도 구분이 약 열단계 정도로 구분된다. 그래서 초보자들이 오기에도 오히려 한국의 웬만한 암장보다 풀어볼 문제가 많을 것 같다. 사실 나도 초보이지만 더 초보 문제와 더더욱 초보 문제가 세분화 된 느낌. 그리고 물론 그만큼 상급자들을 위한 어렵고 다이나믹 한 문제들은 더더욱 많다.  특히 실력자라면 월드컵벽으로 꾸며져서 타이머까지 설치되어있는 벽에 매달려서 도전해보는 것도 굉장히 재밌을 것 같다. 

  나에게는 5급은 대부분 쉽고 4급은 반정도는 도전해서 풀어볼만 했지만 어떤 4급 문제들은 훨씬 어렵게 느껴졌다. 어쨌든 제일 좋았던 건 키가 작은 내 입장에서 소위 '리치빨'문제- 키가 크면 쉽게 풀고 키가 작으면 절대 풀 수 없거나 아주 불리한 문제- 가 없다(?는 더 높은 급은 사실 안 붙어봐서 잘 모르겠지만)는 점이 일본 암장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점이다. 다음번에 올 때는 아마도 가깝다면 내년쯤에는, 4급에서 3급 사이 정도를 풀어볼 수 있다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 암장의 단점이 있다면 이 큰 암장에 샤워시설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중에 방문할 클라이머들을 위해 꼭 당부하고 싶다. 이곳에서 빌려주는 수건도 따로 없고 발 씻을 공간도 남녀 공용으로 개수대가 하나밖에 없으니... 수건만큼은 챙겨야한다. 또한 숙소를 번화가인 기치죠지와 비펌프 오기쿠보 근처에 있는 미타카역 근처로 잡은 건 신의 한수였다. 이 글이 함께 운동하는 많은 클라이머들에게 참고가 되길.